이자겸의 정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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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2-12-29 17:3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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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때 경원이씨 출신인 이자의는 자신의 여동생인 원신궁주와 선종의 사이에서 태어난 한산후를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거사를 도모했으나 왕이 숙부인 계림공(鷄林公:숙종)이 이자의 일파를 주살하고 중서령이 되었다가 그해 11월에 헌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. 이자겸은 자기집에서 성장한 14세의 외손인 인종을 즉위시키는 데 성공하고 그 공으로 수태사 중서령의 최고직을 제수받았다. 또한 1124년(인종2) 2월에는 무인 출신으로 추신(樞臣)이 되어 권세를 잡았던 최홍재를 제거하고 그 공으로 양절익명공신을 제수받았…(skip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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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명
다. 뒤이어 즉위한 예종은 이자겸의 딸을 왕비로 들임으로써 경원이씨와 타협하는 한편, 왕권의 강화를 위해 지방의 중소세력가 출신으로 관직에 진출한 지 얼마 안된 한안인을 비롯한 신진관료들을 발탁해 주변에 포진시킴으로써 기존세력을 견제시키는 등 왕권을 어느 정도 안정시켰다. 그러한 귀족세력 중에 경원 이씨는 문종부터 인종 때까지 80 여 년간 계속 외척으로서 강력한 세력을 굳혀오고 있었는데, 이자겸은 이러한 경원이씨 가문의 출신이었다.
그러나 이후 외척세력으로 재상(宰相)의 반열에 들어선 이자겸과 신진관료인 한안인 일파는 상호대립하게 되었고, 1122년(예종 17) 4월에 예종이 죽으면서 개경의 귀족사회 자체 내 분열은 더욱 심화되었다. 그리고 예종의 동모제(同母弟)인 대방공과 대원공을 왕위찬탈의 음모자로 무고하고 그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의 반대파인 한안인 일파를 살해·유배시켰다. 1094년 문종의 아들인 선종이 죽고 병약하고 11세밖에 안된 어린 나의의 현종이 즉위했다.
이자겸의 정변
레포트/경영경제
1. 이자겸의 정변과 묘청의 등장
고려 인종 때 외척세력가이던 이자겸이 왕위를 빼앗고자 일으킨 반란이다. 고려 귀족사회는 문종대를 전후하여 자신의 정치적·경제적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상호 대립하는 양상이 심화되어갔다. 숙종은 즉위후 원신궁주 이씨와 한산후를 경원으로 귀양보내는 등 왕권의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.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일으켰다 해서 ‘이·척의 난’이라고도 한다.